율른 단문

1 2016. 6. 26. 19:46












얼어버리는 줄 알았다.
그러니까 내가 쟤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지.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석율에게 손찌검을 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도의적인 이유에서는 아니고. 그의 가슴과 팔다리는 여배우의 입술처럼 작고 도톰했다. 숨을 쉴 적마다 부풀어오는 흉곽, 속은 질기고 겉은 부드러운 허벅지가 그랬다. 한 마디로 육감적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모든 일엔 예외가 있는 법이었으니 그 불문율은 나라고 피해가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이별을 통보받았을 때, 나는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집어던졌고 그 모든 것에는 한석율까지 해당된 셈이었다. 낡아빠진 옷장에 던져졌던 연인이 네 발로 기어왔었다. 
미안해요. 그런데요, 우리 이제 진짜로 그만 하자. 다시는 그러지 않을 사람처럼 무릎을 꿇고 싹싹 비는데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전부 그만하자는 말뿐인 거다. 아, 어쩌다가 던져진 서류더미에 뺨을 베인 모양인지 왼쪽 얼굴에 빨간색으로 금이 가있던 것도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얼굴을 몇 번이나 내리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뭐든지 처음에야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아무것도 아니라더니, 비집고 나오는 악의를 억누르는 건 몇 번을 해도 죽을 맛이다. 꿇어앉은 채로 무릎에 얼굴을 비비며 울어대 바지가 축축해질 쯤에는 나도 같이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문을 박차고 나왔더니 이번엔 빌어먹을 열쇠가 제 자리를 못 찾아갔다. 어느 하나 내 말을 들어먹는 게 없는 날이었다. 제발. 딱 한 번만, 이번에도 안 되면 다시 돌아가야지. 그렇게 생각한 동시에 잠금이 풀렸다. 망설임없이 악셀을 밟고 나서도, 기꺼이 술독에 몸을 던질 때도, 나는 손톱을 물어뜯고 다리를 떨었다. 석율은 한 번 울음이 터지면 쉽게 그칠 줄 모르는 타입이었다. 머리카락을 수십 번정도 쓰다듬고, 손 끝에 아주 많이 키스하고, 짠 맛이 나는 입맞춤도 필요했다. 그래서 다툼의 끝은 항상 섹스였다. 이제는 그렇게 해줄 사람이 없었다. 나는 꽃병을 깨뜨려 파편으로 손목을 긋거나 시내의 가장 높은 건물 위에서 허공으로 발을 디디는 그의 뒷모습을 상상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쓸데 없는 걱정이었다.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뉴스 속에서 윤양하와 웃고있는 그를 보았을 때, 나는 있는 힘껏 재떨이를 집어던졌다. 산산조각난 게 텔레비전 귀퉁이 대신 한석율의 두개골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그 인간이 지금.









"문단속도 안 하는 경찰이 여기 있네."

5년. 5년을 함께 했다. 5년을 알았어도 나는 막판에 뒷통수를 후려맞았는데 그는 여전히 내 머리꼭대기를 가뿐하게 기어올랐다. 대체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이라고 누가 그랬는지 모르겠다. 한석율을 처음 만난 건 내가 북창동에서 아가씨들을 잡으러 다닐 때였다. 북창동을 개에 비유하자면 족보가 있는 순혈 진돗개와도 같다. 용산이며 미아리며 쥐잡듯이 집창촌을 잡아들여도 굳건하게 견뎌오던 매춘의 성지를 잡으라고, 새로 부임한 시장이 대대적으로 선포한 것이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게 됐으면 매춘의 성지라는 명예스러운지 불명예스러운지 모를 타이틀을 달고 다닐 이유가 없다. 그렇게 뺑이를 친지 1년이 지나자 나는 세상의 모든 매음굴을 통달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외국인, 다리가 한 짝이 없는 여자, 구순구개열을 가진 여자, 말을 못 하던 여자도 있었고 귀가 들리지 않는 여자가 있었다. 그 두 개가 동시에 안 되는 여자도 물론 있었다. 나를 비롯한 형사들은 그 여자를 북창동 헬렌 켈러라고 일컬었다. 헬렌은 유치장에 토악질을 해대며 골머리를 썩히다가 시설로 넘겨졌다. 저런 꼴을 보고도 그거 할 생각이 들까. 수요가 있으니까 공급이 있는 것 아니냐. 오경위의 말에 나를 비롯한 팀원들은 일제히 입을 닫았다. 
한석율은 당장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도 손색이 없을만큼 배가 남산만한 남자 아래에서 수갑이 채워졌다. 침대 헤드에 어설프게 묶인 손목을 하나하나 풀고, 다시 수갑을 채우는 장면이 골때리게 웃겼는데, 물론 아무도 웃지 않았다. 밝은 곳에서 자세히 본 얼굴은 눈가랑 입술이 볼썽사나웠다. 남자가 무슨 화장을 그렇게 해, 어디 휴지가 있을텐데. 나는 경찰차 안을 한참동안 어지르며 휴지를 찾았다. 언제 받은건지 기억도 나지 않는 주유소표 휴지를 받아든 석율은 두어번 뽑아낸 휴지로 내 얼굴을 훔쳤다. 잠긴 문을 쳐부수다가 긁힌 모양인지 내 이마에서 피가 묻어나왔다. 잘생긴 얼굴인데 조심히 써, 아저씨. 그 날부터 석율은 나를 줄곧 아저씨라고 불렀다. 헤어지던 날까지. 


"망할 년이."


열이 확 뻗쳐 얼굴이 화끈거려 죽겠는데, 화풀이 할 은이 없어 애꿎은 차키만 소파 한 가운데로 던져버렸다. 재수없게 쿠션 사이로 들어갔으면 꺼낼 때 애 좀 먹을텐데. 차키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한석율은 그 누구의 허락도 없이 내 집 문을-그것도 경찰의- 따서 들어와 태연하게 소맥을 말아먹는 중이었다. 장담하는데 아무리 개년이어도 단순히 내 염장만을 지르려고 저렇게 뻔뻔스레 앉아있지는 않는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거겠지. 그에게 버림받았다는 말을 해줬으면 싶었다. 그럼 내가 보기좋게 다시 차버릴거고. 아저씨, 잘 지냈어요?


썅년이 또 아저씨라 하네. 나이도 먹을만큼 먹은 게 지가 마틸다인줄 안다. 돈 다발에서 굴러다니기 바쁠 판에 나 같은 일개 경찰의 도움이 뭐가 필요하다고 왔는지, 요만큼도 짐작이 되지 않는다. 나는 정말로 하고싶은 말들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한숨으로 승화시켜 내보낸다. 북창동에 드나드면서 터득한 능력 아닌 능력이다. 있잖아요. 부탁할 게 있는데. 각오는 했지만 훅 치고 들어오는 뻔뻔함에 나는 코 먹는 소리를 내며 웃음을 터뜨린다. 그는 내 비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우리는 거실의 미약한 스탠드빛에 의지해서 나는 소파에, 석율은 식탁에 거리를 두고 앉아있었다. 나는 널 볼 수 없지만 너는 내 모습이 잘 보이겠지, 어쩌면 점멸하는 조명덕분에 안 그래도 험한 내 인상이 더욱 더 화난 것처럼 보일 지도 몰랐다. 나는 그를 의식하며 일부러 눈썹을 더 구겼다. 쪄죽겠는 열대야에 어울리지 않는 까만 긴 소매를 입어서일까, 살이 좀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



몇 달만에 보여주는 비싼 낯짝이 멍자국을 달고 있다. 아마 낮에는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겠지. 콧잔등부터 눈꼬리에 이르기까지, 보란 듯 길게 남아있는 걸 보니 누군지 모르겠지만 무식하게도 때려놓았다. 그 자식이야? 그 새끼가 너랑 밤마다 그 지랄을 해? 머리 속에서 여러가지 시나리오가 제 멋대로 쓰여진다. 끼를 부리면 부렸지 빈 말하는 성격은 아닌 건 알았지만 적어도 이런 이유로 찾아온 건 아니었으면 했지. 한석율은 짧은 손톱으로 제 손바닥을 꾹꾹 누르고 있다. 울음이 터지려고 할 때 나오는 버릇이다. 말 없이 팔을 뻗으면 감겨오던 어깨가 잔잔히 떨리는 걸 보니까 착잡해진다. 
가로등의 주황색 불빛을 옅게 받은 얼굴이 아기처럼 웃었다. 북창동 골목 제일 구석진 집의 다 꺼져가던 전구 아래에서 처음 봤던 얼굴이다. 이거는. 석율이 밤탱이가 된 눈을 검지손가락으로 턱 짚는다. 이거는 걔가 한 건 아니구. 이번엔 소매를 걷어올려서는. 요거는 저번주에..아 저저번주인가? 아저씨 오늘 몇 요일이지? 아, 그리고 이거는 그 인간...아니 그 사람 경호원이, 때리는 사람이 따로 있어요. 도구를 쓰고 싶으면 직접 때리긴 하는데... 


"너가, 너가 여기있는 거 알아?"
"아니. 그치만.."
"응."
"....."
"그치만 뭐."
"그치만 곧 알게 되겠지." 


그는 나를 그대로 지나쳐 테라스로 향한다. 저거 보여? 턱짓하는 방향의 끝에 못 보던 차가 한 대 섰다. 내가 들어올때까지만 해도 없던 검은색 중형차. 우리 둘은 잠깐동안 말이 없어진다. 그는 내가 경찰이라는 점을 이용해 말을 아끼는 것이다. 아니면 감시에 그치지 않고 도청을 당하고 있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미안해요.."


그냥 말할 수 없는 것이다. 











-














석율른인데 아직 왼쪽을 못정했음니다 확실한 건 왼쪽이를 버리고 윤양하한테 취집한...뭐 그런...인연 끊고 사는 쌍둥이동생 김지웅과 북창동 시절 함께 굴렀던 장백기 이런 거 보고 싶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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